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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웹소설판 5장 45화입니다. 46화부터 다른 분의 번역문이 있으니 46화부터는 번역을 하지 않습니다. 이 번역문을 올리는 현재 5장 49~56화가 비어 있는데 이 뒤의 번역문을 다 읽고 원문을 느긋하게 읽는 동안 번역문이 올라오지 않으면 조금 더 번역문을 올릴지도 모릅니다(...)
원문을 읽으면서 그대로 옮겨 적는 수준에 검수를 하지 않았지만, 내용을 파악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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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45 『벗어날 수 없는 주박』
빌헬름의 입으로 전해진, 들은 적도 없는 마녀의 이름에 전율한다.
스바루가 알기로 ‘마녀’는 사테라를 제외하면 에키드나의 묘소에서 만났던 여섯 명의 대죄를 칭하는 마녀들 뿐이다.
설마 그 외에도 ‘마녀’가 존재하다니 청천벽력과 같다.
“그럼, 빌헬름 씨는 그 스핑크스라는 마녀가 이번 마녀교의 습격에 관여하고 있다고…… 대죄주교 이외에도 마녀가 있다고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적의 주력은 대죄주교 네 명에 사자가 두 명. 거기에 더욱이 마녀가 가담하는 형태가 되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전력비는 절망적으로 변한다.
그런 스바루의 걱정에 빌헬름은 손을 들어
“죄송합니다. 말이 부족했습니다. 마녀 스핑크스의 존재는 그 아인전쟁 때 멸했습니다. 그녀석이 이번 습격에 관여할 여지는 없습니다.”
“마녀가 죽었어요? 그거 틀림없어요? 제겐 죽은 척해서, 도리어 죽어도 자유로운 게 마녀라는 것이라는 인상이 있는데요.”
스바루가 금기를 언급했을 때 나온 사테라도 그렇고, 꿈의 영역에서 사후 세계를 만끽하던 에키드나도 마찬가지다.
죽었다는 말을 들어도 그것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것이 마녀다.
“스바루 공이 마녀에게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스핑크스는 마녀라 하지만 편의상 그렇게 불렸을 뿐인 존재입니다. 왕국군이 그렇게 호칭한 사실이 있을 뿐으로 당사자가 그렇게 이름을 댄 적은 없었습니다.”
“당사자가라니… 빌헬름 씨는 직접 만난 적이 있어요?”
“내전 중에 몇 차례인가 있습니다. 아인전쟁의 종결은 스핑크스의 목을 친 것이 직접적인 계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로즈월과 보르도, 거기에 아내가 그 주역입니다.”
“로즈월!?”
예상외의 이름이 튀어나와서 스바루는 눈을 크게 떳다.
그런 스바루의 반응에 빌헬름은 고개를 살짝 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선선대의 로즈월 경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렇게 친했던 건 아닙니다만…… 신세를 졌던 자입니다.”
“선선대라니…… 아아, 그런가. 로즈월의 이름은 대대로 세습되는 거였나.”
“공교롭게도 선선대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로 소원해져 지금 대의 메이더스 경은 면식만 있는 정도. 아니, 이건 쓸데없는 말이었습니다.”
의외의 관계성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지만, 확실히 원래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스바루가 끄덕이니 빌헬름은“그래서”라며 말을 이었다.
“스핑크스가 아니지만, 어쩌면 사용되는 주술은 같은 계통이라 생각됩니다. 주검을 조종하는 술식으로 당시에는 시체병 등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시체병…… 그… 약점 같은 건 있어요?”
“제가 아는 한, 시체병은 사체를 움직일 뿐인 술식에 불과합니다. 생전의 기량을 완전히 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자를 욕보일 뿐으로 술자의 본성을 반영한 듯한.”
“하지만, ‘여덟 팔’과…… 그.”
말문이 막힌다.
시체병이 되어 죽음을 모독받고 있는 빌헬름의 아내. 도리상 그것을 받아들였던 빌헬름에게 그런데도 스바루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주저되는 것이다.
빌헬름은 그런 스바루의 주저에 씁쓸하게 표정을 푼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필요한 것입니다. ――음, 아내와 쿠르간의 기량은 생전에 육박합니다. 단순한 시체병이 끌어낼 수 있는 힘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러면, 시체병과는 다른 뭔가라는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사모님이 죽지 않았을 수도…….”
“아내는 죽었습니다. 제가 힘이 부족해서.”
연약한 희망에 매달리려 했던 것은 스바루 쪽이었다.
그런 스바루의 감정을 담담한 빌헬름의 목소리가 단칼에 잘라버린다.
그리고 그 노검사의 옆모습에 스바루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당시에도 단순한 시체병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이 극히 드물게 존재했습니다. 술식에도 적성이 있는 건지, 혹은 다른 요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정강함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야겠지요.”
“쓰러뜨릴 방법은 있어요?”
“철저하게 육체를 파괴하거나, 또는 몸 어딘가에 있는 저주의 표식을 도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체병은 단순한 사체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깊이 생각하는 빌헬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평정을 의식하며 애써 자신이 해야만 할 일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 목소리의 떨림도 단단히 쥔 주먹도 부릅 뜬 눈도 무엇도 감추는 것은 없는데.
“오래 붙들어서 죄송합니다. 크루쉬 님을 이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습니다. 자, 이쪽입니다.”
빌헬름이 허리를 굽혀 바로 앞까지 온 방의 문을 가리킨다. 4층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은 허물어진 플레이트에 휴게실이라고 적혀 있는 방이었다.
그 안에 스바루를 부른 크루쉬가 기다리고 있다.
빌헬름의 옆을 지나 스바루는 구두소리를 내면서 문을 향했다.
몹시도, 문까지의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구두바닥이 바닥에 딱 붙어 스바루의 전진을 방해하는 것 같은 감각조차 들었다.
그것이 기죽어 있는 자신의 약함이라는 것을 스바루는 확실히 자각하고 있다.
“――나다. 나츠키 스바루입니다. 저… 크루쉬 씨?”
문을 노크하고 상대에게 전해졌을까 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부른다. 그대로 잠시 침묵이 있었고, 상대 쪽에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얼굴을 보인 건 페리스다. 단,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스바루큥…….”
울어서 퉁퉁 부운은 붉은 눈과 흐트러진 갈색 머리. 온몸은 자기 것이 아닌 누군가의 피로 검붉게 물들고, 흰 피부에 튄 그것을 닦을 여유조차 없었겠지. 뺨과 목에도 선혈이 묻어 있었다.
그 처절한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숨이 막혔다.
“크루쉬 씨가 나를 불렀다 들어서. 그래서.”
“응. 안에, 침대에 있어. ……절대로 쓸데없는 짓만은 하지 말아줘.”
굳은 목소리, 후반에는 증오조차 배어나왔다.
하지만, 그 증오는 스바루를 향한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향한 것이다. 이 세계 모두를 증오하는, 갈 곳 없는 분노가 지금의 페리스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스바루는 안에 있는 페리스의 뒤를 따라갔다.
휴게실이라 해도 그다지 넓지 않은 방이다. 긴 탁자와 의자가 2열로 되어 있고, 안쪽에 문지방으로 나뉘어진 작은 방이 있다. 침대는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초라한 침대 위에 그녀가 있다.
“나… 츠키 님?”
의식이 있던 크루쉬가 방에 들어온 스바루를 알아채고 이름을 부른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응답하고자 스바루의 목이 경직한다. 각오하고, 평정을 위장하고, 안심한 듯한 말을 건다――그런 간단한 것도 못할 정도로.
“몸이 성치 않은 모습이라…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그런 것……은. 그렇지 않아.”
굳어 있는 스바루를 보고 크루쉬가 힘없는 목소리로 사죄한다. 그런 그녀를 비통한 태도에 당황해서 스바루는 얼버무리는 말을 했다.
――카펠라의 피를 뒤집어쓰고 저주에 씌인 크루쉬는 참혹한 상태였다.
목이나 손발 등 보이는 범위의 피부에는 얼룩에 검은 혈관이 비치고 있다. 타월 블랭킷과 입은 옷 속의 피부도 같은 피해를 받았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피가 돌지도 않는 검은 혈관은 번번이 맥동하고, 가는 크루쉬의 몸을 마치 뱀이 몸부림치듯이 옥죄고 있는 것 같았다.
희고, 기미 하나 없었던 그녀의 피부가 추악에 유린당하고 있다.
당연히 피해는 목 아래 뿐만이 아니다.
늠름하고 길다란 검을 연상시켰던 크루쉬의 영리한 미모――그 왼쪽이 얼룩의 침식을 받고 있다. 그에 비해 얼굴 오른쪽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좌우의 대비를 부각시키고, 고결한 자가 더럽혀지는 불합리를 나타낸다.
왼쪽 눈을 덮듯이 안대가 걸려 있었으나, 그 아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이것이…… 나와 같은 용의 피의 저주라고?”
그렇다고 한다면 이 정도로 잔혹한 것은 없다.
크루쉬 칼스텐을 아는 스바루야말로, 그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의 오른다리를 내려본다. 크루쉬의 피부와 같이 얼룩에 검은 혈관이 둘러싸인 오른다리. 하지만, 스바루의 다리는 그 끔찍한 외관을 제외하면 영향은 없다. 아픔도 쑤시는 것 같은 감각도 조금도 스바루에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크루쉬는 확실히 다르다. 괴로운 듯이 숨을 쉬며, 얼룩이 맥동할 때마다 한숨에 아픔을 견디는 기색이 보인다.
“페리스…….”
어떻게 안되는 거냐고, 왕국 최고봉인 치유술사인 그를 돌아본다. 하지만, 스바루의 그 짧은 생각은 그저 그 자신의 무력함에 이를 악무는 페리스를 상처입힐 뿐이었다.
입술을 깨물고 자신의 팔을 손톱으로 찌르며 고개를 숙이는 페리스. 페리스야말로 가장 이 장소에서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이해하고 원통해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다면 스바루가 생각한 이상으로 모든 방법을 동원한 다음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도 없다.
“쿠루쉬 씨…… 내게… 무엇을.”
이정도로 괴로운 상황 하에 그녀는 무엇을 위해 자신을 불러냈을까.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일까.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색욕’에게 복수해 달라거나. 어쩌면 스바루에게 원망하는 말 한마디라도.
욕을 잔뜩 먹는 것도, 저주를 퍼부어도 받아들이자.
스바루의 질문에 크루쉬가 괴로운 듯이 입을 연다.
그 입술에 몸을 맡겨, 가냘픈 그 한숨을 놓치지 않으면서 귀를 귀울인다.
그리고
“…… 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
“저와…… 같은… 저주를 받았다고…… 들어서…….”
스바루는 안도한 듯한 한숨에 부드러움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자기 마음에 있던 본심을 이해하고, 한심함에 화가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난을 받는 쪽이 더 편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크루쉬의 고결함을 의심하고, 그녀의 고상한 마음씨를 깎아내렸다. 그녀는 그저 순수하게 스바루의 몸을, 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을 뿐인데.
“미안…… 미안해… 크루쉬 씨…….”
마음을 의심한 것도, 이런 식으로 괴로운 결과가 된 것도, 괴로워하는 그녀 대신할 수 없는 것도, 전부 섞인 감정으로 목소리를 짜낸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힘없이 배 위에 올린 크루쉬의 손을 잡았다. 검은 혈관은 만져져도 감촉이 없다. 이만큼 일그러진 모습으로 피부의 감촉이 변하지 않는 것이 더 불쌍했다. 다만,
“후… 으……?”
“읏!?”
푹 꺼지는 것 같은 크루쉬의 한숨과 동시에 스바루의 목을 고통이 덮쳤다.
달궈진 철을 잡은 것 같은 아픔이 손바닥을 기점으로 전신을 찌른다. 순간적으로 스바루가 크루쉬의 손을 놓고 통증이 왔던 자신의 손바닥을 봤다.
그 손바닥에 얼룩의 침식이 발생하고 있다.
“뭐… 야……!?”
“보여줘, 스바루큥!”
아픔에 신음하는 스바루의 손을 잡은 페리스가 그 침식을 확인한다. 치료술의 빛이 그 얼룩을 덮지만 아픔이 사라질 기색도 침식이 없어질 기색도 없다. 그 대신에――
“페리스…… 크루쉬 씨의 손이!”
“어……?”
눈을 크게 뜬 스바루에 이끌려 페리스가 크루쉬 쪽을 봤다. 그리고 그 노란색 눈동자가 스바루와 같은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바루가 잡은 크루쉬의 왼손――그 손등에서 살짝이지만 얼룩의 침식이 엷어진 것이다.
그 변화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보는 스바루의 뇌리를 어떤 생각이 스친다.
“설마, 크루쉬 씨의 몸에서 내 몸으로 옮겨갔다……는 건가?”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접촉한 손과 손의 변화가 그대로 플러스와 마이너스다. 크루쉬의 몸에 깃든 저주가 스바루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크루쉬 님의 몸을 진찰했는데, 아까부터 몇 번이고 만졌는데…… 내, 내게는…….”
스바루의 가설에 페리스가 고개를 흔든다.
그것은 치유의 가능성이 생겼다는 기쁨이 아닌, 가설에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하는 모습이다. 아니, 분명 그의 심정은 다르다.
“난 크루쉬 님을 편하게 해드릴 수가 없어…….”
“그럼 다시 한번 시험해보자.”
당황하는 페리스를 밀어내고, 스바루는 크루쉬 앞에 다시 섰다. 크루쉬는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아직 모르는 얼굴로 다가서는 스바루에게 글썽이는 눈을 향하고 있다. 안대로 가린 한눈에 스바루는 굳은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기합을 넣었다.
다시 확인하기 위해 이번에는 크루쉬의 뺨을 살짝 만졌다.
“――우… 으! ”
직후에 스바루의 뇌에 찔린다. 혈관에 마그마를 흘리는 것 같은 작열의 고통. 손끝을 통해서 크루쉬의 몸을 범하는 저주가 흘러들어와 스바루의 신경을 태워 간다.
“으… 아아아아!?”
견디기 힘든 격통에 절규하는 스바루는 크게 소리치며 몸을 젖힌다. 그대로 기세 좋게 뒤로 자빠져 만지고 있던 손이 크루쉬에게서 떨어졌다.
“아… 하… 하아…….”
폐가 떨리고, 안구가 경련한다.
육지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스바루는 필사적으로 산소를 바랐다.
“스, 스바루큥…… 괜찮아?”
호흡이 진정되기 시작한 것을 보고 페리스가 스바루에게 말을 걸어 온다. 딱딱한 바닥의 감촉을 확인하는 정도의 여유가 생긴 스바루는 몸을 겨우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 위의 크루쉬의 얼굴을 보며
“어때, 페리스. 조금은 효과가 있었어?”
“아…….”
털썩하고 크루쉬의 상태를 확인한 페리스가 주저앉는다.
그의 눈에도 보였을 것이다. 크루쉬의 저주로 침식된 뺨이 그 침식에서 조금 나아진 것을. 이런 치유가 가능하다면 크루쉬를 구하는 것도――.
“안돼요, 나츠키 님…….”
다시 한번 도전하려고 일어서는 스바루. 하지만, 그 행동을 막은 것은 다름아닌 크루쉬 자신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의미를 모르는 스바루는 무슨일인지 물었다.
“알아채지… 못했나요? 당신의 손이…….”
“――손?”
말을 듣고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제야 이해했다.
오른다리와 같이 얼룩에 검은 혈관이 퍼진 피부.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 정도라면 크루쉬의 저주를 떠맡자는 각오를 한 것이 흔들릴리가 없다.
단지, 확실하게 이상한 점이 있었다.
크루쉬로부터 가져온 얼룩과 비교해서 그 침식의 범위가 훨씬 커진 것이다.
그녀의 몸에 있던 침식은 왼쪽 손등과 왼뺨으로, 드러나 있던 검은 혈관이 옅어진 정도의 변화가 스바루가 만진 것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한편 그것을 가져왔을 스바루의 오른팔은 팔꿈치부터 손등까지의 피부가 빈틈없이 얼룩에 덮이고 알았다. 그 농도는 확실하게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져오는 저주의 비율이 일대일 정도가 아니다. 십대일 정도의 수준이다.
“아니, 그래도…….”
그것이 망설일 이유가 되는가 하는 것은 또 별개다.
받아들이는 순간은 고통이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식으로 몸에 받아들여버리면 저주가 스바루를 괴롭힐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크루쉬에 비해서 스바루가 받는 고통 따위는 한순간이다. 거기에 남자와 여자, 이 저주의 추함을 어느 쪽이 견딜지 따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오른다리나 오른손이 새까맣게 되는 것 정도는 크루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상관없다.
“나츠키 님, 안돼요. ……그 마음은 받을 수 없습니다.”
“바보 같은 말 하지마. 나는 살짝 따끔한 정도라 괜찮아. 잘난 척 타투를 해서 장래에 후회하는 것에 비하면, 원래 그랬던 몸을 더럽힌 거라 생각하자고. 아픔도 가져갈 수 있어. 이상하게도 나는 힘들 일이 없다고. 그러니까.”
“이후도 그럴 거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와 나츠키 님 둘은 싸울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건 현재 상황에서는 치명적입니다…….”
자기 몸보다 도시와 타인을 걱정하는 크루쉬의 판단. 그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생각이지만, 모든 일은 이론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페리스, 나츠키 님을 멈춰줘…….”
“저, 저는…….”
“부탁이야. 나츠키 님은 지금 나 이외의 사람에게 필요한 분이니까…….”
“스바루큥이 힘내준다면…… 크, 크루쉬 님의 고통은.”
망설이는 페리스의 판단은 크루쉬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까닭이다. 그를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틀리지 않았으니까.
틀리지 않은 것이 바르지 않다는 것이 틀린 것이다.
“한때의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나츠키 님, 부탁입니다…….”
“크루쉬 씨, 그래도 나는.”
“말하지… 않았습니까. ――남은 것은 전부 내게 맡기라고.”
“――읏!”
크루쉬의 탄원하는 듯한 눈이 스바루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런 든든한 말을 자신이 입에 낸 것일까. 그것을 들은 크루쉬는 스바루에게 그 말을 다하라고 그리 말하는 것일까.
“내게도… 말해주세요…….”
“――――”
“남은 것은 전부 내게 맡기라고.”
난처한 미소가 스바루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숨을 삼키며 마른 입 속에서 혀를 움직이고, 스바루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다음 일을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일에만 빠져버린 자신을 막으며,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말하게 하고, 그러니까 적어도――.
“크루쉬 씨, 느긋하게 쉬고 있어 줘.”
“……나츠키… 님.”
“남은 것은 전부 내게 맡겨도 되니까.”
“――네.”
요구된 역할과 바라던 말을 하는 것 정도는 해야 한다.
스바루의 대답을 듣고, 크루쉬가 안도한 듯 긴 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힘없이 눈꺼풀을 닫는 것은 지금까지 기력으로 어떻게든 의식을 잡고 있었다는 증거다. 바로 한숨을 작게 쉬고, 크루쉬가 다시 저주의 침식과 싸우는 시간이 시작된다.
“미안, 페리스. 나도 가지 않으면 안돼.”
“나는…… 어쩌면… 좋을까?”
크루쉬에게 타월 블랭킷을 덮어 주며 일어선 스바루에 들린 가는 목소리. 스바루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페리스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속마음을 말하자면, 이대로 크루쉬의 곁에 계속 붙어 있고 싶다.
하지만 상황은, 페리스의 능력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네 힘이 필요해. 도시청사를 벗어나라고까지 하지 않아. 그래도 무슨 일이 있으면 다친 사람을 여기로 후송하도록 말을 전해 둘게. 그러니까, 그걸 부탁해.”
“……가장 구하고 싶은 사람은… 구하지 못하면서 말이지.”
“페리스…….”
“미안. 바보 같은 말을 했어. ……잠시만 둘만 있게 해줘.”
외면하면서 침대 옆 의자에 페리스가 주저앉았다. 스바루는 마지막으로 그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대로 휴게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는 들어갔을 때와 변함없이 빌헬름이 곧게 서서 기다리고 있다.
“크루쉬 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돌아온 스바루에게 빌헬름이 그리 말을 걸었다. 안에서 일어난 일이 새어 나온 것일까, 혹은 스바루의 표정이 알기 쉬웠던 것일까.
“마음을 헤아렸다는 훌륭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내가 독려받았다는 정도의 이야기니까요. ……내 몸은 대체 뭘까요.”
크루쉬의 저주를 받아들이거나, 애초에 침식의 기세가 약해지거나.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녀인자라는 것과 ‘사망회귀’마저 모든 것이 애매하다.
언젠가 그것들에 대한 이유와 끝을 볼 수 있을까.
“크루쉬 씨는 페리스에게 맡기죠. 전부 정리가 되면 다시 한번 아까 했던 것을 해볼까 해요.”
“그 오른팔은 괜찮은 겁니까?”
“겉보기엔 좀 그렇지만요. 길소매를 입고 장갑을 끼면 괜찮으려나. ……미소녀 한 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사라지지 않는 상처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거부감은 있어도 그것은 스바루의 진심이기도 하다.
해결책이 따로 없다면 크루쉬의 저주를 전부 받아들여도 좋다. 그걸로 몸이 새까맣게 되어도. 에밀리아나 렘, 베아트리스에게 용서를 구해야지.
“하지만, 그것도 전부 이 난관을 넘어선 다음의 이야기예요. 빌헬름 씨, 밑으로 내려가죠. 아마 제어탑 공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테니까요.
전력은 어쩌면 이쪽이 준비할 수 있는 것 중 최고 클래스가 갖춰졌을 것이다.
다음은 대죄주교들의 능력과 상성, 그리고 공략을 위한 분담과 실행의 타이밍. 마녀교가 요구한 기한까지 앞으로 여섯 시간 정도 밖에 없다.
“스바루 공, 그 건에 대해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빌헬름이 계단으로 가려는 스바루를 멈춰 서게 했다. 노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은 등뒤에 있는 문――그 안에 있는 주인을 걱정하는 눈빛을 보이며
“가능하다면 제게 ‘색욕’을 토벌하는 임무를 받도록 추천해주시길 바랍니다. 초재생에 변이, 그 권능의 강대함은 잘 알고 있으니 부탁드립니다.”
“크루쉬 씨의 복수라는 것인가요?”
“그것도 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색욕’에게는 크루쉬 님에게 무엇을 했는지 산채로 잡아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악귀도 될 겁니다. 검으로 녀석을 베어 목을 쳐내기 전에 반드시 캐낼 것입니다.”
검귀가 발하는 귀기가 스바루에게는 열파와 같이 느껴졌다.
노기, 검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빌헬름의 패기가 주인의 보복에 타오른다.
“그 기상은 좋지만요…… 시체병은 괜찮은가요?”
“――――”
“사모님과, 알고 있는 상대죠? 무슨 일이 있어도 결판을 낼 필요가 있는 것은 빌헬름이라고.”
“스바루 공, 아래에 라인하르트가 와 있습니까?”
불안을 말하는 스바루에게 빌헬름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머쓱해 하는 스바루는 끄덕였다. 라인하르트의 전력은 공략에 빠져서는 안된다. 단지, 선대검성이 그에게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은 확실하다.
“시체병의 성질을 라인하르트에게 전하는 것은 하지 말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갑작스러운 그 부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그건…… 녀석에게 빌헬름 씨의 사모님에 대해 말하지 말아라…… 그런 의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라인하르트에게…… 손자에게 사자가 된 아내를 만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것은 분명 자신을 나무라겠죠. 다름아닌 제 탓이니까요.”
“빌헬름 씨 탓이라니, 그런 게.”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스바루는 경솔함에 그것을 말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단란했던 장소를 파괴한 하인켈의 발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빙성은 없다. 하지만, 부정도 하지 못했다.
빌헬름이 라인하르트를 아내가 죽은 원인이라고 힐책했다. 그런 믿기 힘든 과거를 부정하지 않았다.
“스바루 공은 ‘검성의 가호’가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고 계신가요?”
“……솔직히 잘 모르는 쪽이라고 해야겠죠. 아마 ‘검성’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모두 갖고 있었던 가호로 그것을 가지면 엄청나게 강해진다거나 그런 가호라는 정도의 인식 밖에…….”
“대강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유일하게 ‘검성의 가호’가 다른 가호와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계승된다는 것입니다.”
“계승되는… 가호…….”
스바루의 한숨에 빌헬름이 끄덕였다.
노검사는 눈을 감은 채 뭔가 슬픈 과거를 떠올리듯이.
“그 가호는 대대로 초대(初代)인 레이드 아스트레아 시대부터 끊이지 않고 계승되어 왔습니다. 가호는 아스트레아가의 혈통이 되어, 반드시 차기 검성을 일족에서 선택합니다. 아내의 가호 역시 라인하르트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리해서 일족에서 계승되는 가호…… 그런가… 그런 건가. 그래서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라인하르트에게 가호가.”
이해가 또, 납득이 되려는 스바루의 머리에 뭔가가 걸렸다.
백경에 선대검성이 패해서 전사한 결과, 라인하르트에게 가호가 계승되었다. 슬픈 과거지만 그것은 모종의, 정당한 계승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흐름이 오늘 아침 아스트레아가의 말다툼에 들어맞지 않는다.
빌헬름의 비탄이, 하인켈의 비웃음이, 라인하르트의 침묵이, 그 정당한 계승을 어째서인지 방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은――
“백경과 한창 싸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빌헬름… 씨…….”
“라인하르트가 가호를 계승한 것은 아내가 참여한 대정벌이 한창일 때. 전투를 하는 중에 아내는 검신(剣神)에게 버려져 후위를 평범한 한 명의 여성으로서 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스트레아가 분열의 진실이다.
백경을 토벌하기 위한 대원정,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서 가호는 차기에게 상속됐다. 그리고 전장에서는 가호를 잃은 한때 검성이 남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선대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수많은 병사를 지키기 위해 마수와 싸워――소식이 끊겼다.
“아내에게서 검을 빼앗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저입니다. 검신에게 사랑받았던 아내에게 검을 버리게 하고, 평범한 여자로 만든 건 저. 그것이 아내의 죽음을 불렀습니다.”
“――――”
“검신은 자신을 배신한 아내를 용서하지 않았고, 전장에서 가호를 빼앗겨서 버렸을 터인 한 자루 검 밖에 의지할 것이 없었던 아내가 어떤 마음으로 있었는지……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가호가 깃든 라인하르트를 힐책한 것은 사실입니다. 조모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무거운 숙명을 지기 시작한 손자를 어리석은 저는 용서하지 못했고, 후회… 하고 있습니다.”
어젯밤, 빌헬름이 스바루에게 내비친 후회――그것이… 그 과오다.
라인하르트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는 빌헬름은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아스트레아가는 갈라졌다.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의 죽음에 라인하르트의 책임 따위는 하나도 없으니까요. 제 손자를 비난할 이유 따위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라인하르트에게는 말하지 않고 자신이 결판을 낸다는 것이다.
그 마음은 지금 이야기로 아플 정도로 알았다. 스바루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빌헬름이 짊어진 것은 너무나도 크다.
“크루쉬 씨에 대해서도 사모님에 대해서도…… 거기에 묻혀버릴 거예요 빌헬름 씨. 그리고 시체병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녀석들이 어디로 얼굴을 들이밀 건지는.”
“그것이야 말로 쓸데없는 걱정이지요, 스바루 공.”
“네……?”
확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려 했던 스바루에게 빌헬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검귀는 그 표정을 무섭게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아내가 저를 만나러 오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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