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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웹소설판 5장 55화입니다. 52~54화는 다른 분이 올려서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5장은 다 끝났네요. 56화부터 5장 끝까지는 다른 분이 올린 것이 있습니다. 다 연결이 됐으니 어서 뒷 부분을 읽고 6장을 읽어야겠습니다. 아이고...
원문을 읽으면서 그대로 옮겨 적는 수준에 검수를 하지 않았지만, 내용을 파악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공지글에도 써놨지만 퍼가는 것은 무조건 금지합니다. 번역 실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 라이센스를 받은 것도 아니니 긁어서 퍼가는 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단, 글의 링크를 남기는 것은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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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55 『투신과 도전자』
――투신 쿠르간의 전설은 볼라키아 제국에 널리 퍼져 있다.
실력주의인 볼라키아 제국에 있어서는 능력만 있다면 출신은 따지지 않는다.
아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남아 있는 루그니카 왕국이나 외지의 인간을 배척하는 구스테코 성왕국 등에 비하면, 볼라키아는 피나 외견을 고려하지 않는 카라라기 도시국가에 가까운 방침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사대국(四大国) 중에서도 볼라키아는 순혈 인간종 이외에게 있어서 살기 좋은 국가다.
그러나 한편, 그 가혹한 실력주의는 지혜도 힘도 없는 자에게 대해 가열한 탄압과 비난을 의미한다. 당연히 개인에 대한 평가와 종족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특히 다완족(多腕族/팔이 많은)은 오랫동안 일정한 토지에 정착하지 않고 유랑하는 종족으로서 각지를 유랑해 온 종족이다. 다완족은 그 까닭이 있는 듯한 외견과 아인종으로서는 마법을 다루는 적정이 두드러지게 낮기 때문에 종족단위로 열등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종족의 모수도 많다고는 못하고, 분쟁이 생기면 토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기보다 이주를 선택한다.
그런 종족으로 있었지만, 각지에서 꺼려했던 그들이 볼라키아 제국에 이르러 거기서 철혈의 제국주의에 압도되어 궤멸할 뻔한 것이 자명했다고 한다.
――그 실력주의의 세계에서 ‘아니오’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쿠르간 그 사람이다.
다완족은 인류종과 다르게 두 개 이상의 팔을 가진 것이 특징이지만, 그 팔의 수에는 개체차가 있다. 많은 경우 네 개에서 다섯 개에 이르는 다완족 중에서도 여덟 개나 팔을 가진 쿠르간은 이색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젊은 쿠르간은 이주한 토지에서 떠나기를 요구하는 영주의 의견을 거절하고, 자신의 여덟 팔을 휘둘러 사자를 쫓아냈다. 그리고 겁먹은 동족들을 설득하고, 힘으로 배척하려고 한 영주의 사병을 모조리 격파해 영주의 저택까지 공격해나간 것이다.
야만족의 습격에 영주는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쿠르간은 성급하게 일을 끝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일족의 힘을 증명했다고 큰소리를 쳐, 그대로 영주의 새로운 사병으로 들어갔다. 그 후, 수많은 전쟁에서 공적을 세워 <여덟 팔의 쿠르간>이라는 이름은 볼라키아 제국의 전설로써 오랫동안 전해진 것이다.
“――――”
차가운 물의 감각을 전신으로 느끼며, 머리 위로 출렁거리는 수면 너머에 있는 달을 올려본다.
오른쪽 눈을 받치는 뼈가 부서져 감은 눈꺼풀 너머에서 안구가 떨어질 것 같다. 바로 갖다 댄 왼손이 치유마법을 발동하고, 최저한의 수복을 한다.
남은 왼쪽 눈이 흐름을 따르는 붉은 물을 바라보며, 수로의 바닥에 등을 대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
물속에 있는데도 차가워야 할 물을 느낄 수 없다.
중력이라는 무게에서 해방되어 부하를 잃어버린 세계에서 천천히 손발에 힘을 집중한다.
몸의 멍에과 같은 정도로 간단하게 마음의 멍에도 벗어났으면 좋겠는데――마음은 지금도 어둠 속에 있다.
어쩌면 이대로 가라앉아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숨은 이윽고 괴로워지고, 눈꺼풀 안의 어둠에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홍색 머리의 소녀가, 주황색 털빛의 고양이소녀가, 흑발의 소년이 떠올라 축축해졌을 마음에 열을 올린다.
또 금방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이다. 그것은 아까의 객기에 조차 미치지 못하는 용기가 부서진 것으로 증명되었다. 있지만, 어쨌다고.
――그것은 자신이 가라앉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푸하!”
둥글게 만 몸을 펴고, 물밑을 차 단숨에 부상했다. 수면에서 얼굴을 낸 가필은 머리를 흔들었다.
오른쪽 눈의 시야는 닫힌 채로 세게 맞은 데미지가 가시지 않은 머리는 땡땡 울린다.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구역질은 전신에 남고, 빠진 이의 위화감이 이의 맞물림에 영향을 준다.
“젠장할…….”
수로 가장자리를 잡아 몸을 끌어올린다. 젖은 몸을 짐승처럼 흔들어 물을 털어낸 가필은 본다.
방금 전, 가필을 수로로 때려 떨어뜨린 위치.
거기에 변함없이 투신이 서 있다.
빼어 든 오니보우쵸도 그대로, 조각도 투기를 푸는 것도 없이 가필이 기어올라오지 않을 것이라는 조금의 의심도 없는 기색으로, 그곳에.
“――――”
말이 없는 투신을 보면서 가필은 생각했다.
애초에 여기에서 가필이 쿠르간과 부딪힐 필연성은 적다. 가필에게 요구된 역할은 도시청사에 기습을 걸 가능성이 높은 <색욕>을 막는 것이다. 여기에서 쿠르간과 싸워도 비전투원만 남은 도시청사를 구할 수도 없다.
전체 상황을 보면, 가필이 여기에서 쿠르간과 싸우는 것은 모든 의미로 하책이다.
“그래도 말야…… 놓아주지… 않겠지.”
올려다 볼 정도의 거구, 압도적인 근육량. 결코 날렵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외견이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해도 투신의 칼날의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투신을 앞에 둔 시점에서 가필은 도망칠 수 없다.
지금, 가필에게 허용된 선택은 두 가지.
――맞서 싸워 죽을 것인가, 싸우지 않고 죽을 것인가, 뿐이다.
“바보...... 생각할 경우냐고!”
머리를 스친 불길한 생각을 떨쳐낸 가필은 엄니를 물어 소리낸다. 부러져 급조한 엄니가 아팠지만, 그 아픔이 소극적인 사고를 예리하게 새겼다.
질 예감 따위, 패배할 전조 따위 전부 쳐내라.
지기 위한 자기 자랑 따위 필요 없어.
――이겨, 이겨, 이겨, 이겨, 이겨, 이겨!
이겨서 내 가치를 증명해라!!
“오… 오오오오오옷!”
거칠게 내지르며 두려움을 억누른 가필은 다시 한번 돌격한다. 조금 전 공방으로 혼신의 일격은 막혔다.
하지만 무게가 부족하다면 속도로 돌격한다.
손톱으로, 이빨로, 도려내고, 찢고, 물어 뜯어서 없앤다.
“――――”
무언의 투신이 뛰어든 가필을 받아 친다.
어깻죽지에서 나오는 오니보우쵸의 일격.
참격이라고 하기에는 관통력이 낮고, 타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날카롭다. 그것은 쿠르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검격과 타격이 혼재해 적을 죽이는 접근 공격이다.
맹렬하게 다가오는 오니보우쵸의 도신이 몸을 굽힌 가필의 뒤통수를 스친다. 여파에 목덜미를 베여 가필의 뇌를 백열하는 사고가 빠져나갔다.
일격에 대해 가필은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회피행동에 들어갔을 터이다. 살짝 돌아 움직이는 몸집이 작은 자신과 많은 팔이라고는 하지만 긴 것을 다루는 거구와는 속도가 다르다.
크게 휘두르는 것을 피해, 뛰어들어간 품에 손톱을 찔러 넣을 유예는 있었다. 있었을 터이다.
“――큿.”
그런데도 품으로 깊게 들어간 가필은 그 곳에서 강제적으로 몸이 젖혀진다. 가슴 아래에서 턱을 날려버릴 기세로 쿠르간의 옆구리의 팔이 쳐올라온다.
이것도 예상외――아니, 몸의 밸런스가 다르다.
다완족에서 태어난 쿠르간의 육체는 그 여덟 개의 팔을 휘두르는데 최적의 성장, 최적의 육체를 형성하고 있다.
그 육체의 경이로운 전투기법은 가필이 아는 사지를 다루는 인류종과는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일격을 날리면 몸이 열려 틈이 생기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한 팔을 막으면, 막은 쪽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사각을 얻을 수 있는 상식도 통용되지 않는다.
죽음에 이르는 것이 확정된 하나의 팔을 막아도, 같은 짓이 가능한 일곱 개의 팔을 막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으, 카아아아아아앗!!”
전율하는 가필의 눈앞에서 투신의 팔이 세계를 흔들리게 한다.
웅웅거리는 오니보우쵸는 사방에서 이쪽의 육체를 토막내려고 난폭하게 계속 쳐 박고 있었다.
일격을 방패로 받고, 일격을 몸을 굽혀 피하고, 일격을 뛰어서 충격을 흐트리고, 일격을 흘러 넘겨 회피하고, 일격을 혼신의 타격으로 상쇄하고, 일격을 어깨를 부수면서 치명상을 피하고, 일격을 짐승화한 팔로 억지로 흘리고, 일격을 직격으로 맞아 포석 위를 꼴사납게 구른다.
“아큿… 커헉.”
――여덟 팔.
지금의 가필의 전력을 다한 공방이 쿠르간에게 있어서의 일합을 겨우 넘긴 것에 불과하다.
그만큼 치명적인 공격이 폭풍처럼 밀려오고, 쿠르간은 자신의 여덟 개의 팔을 한번씩 휘둘렀을 뿐인 것이다.
투신이 마음만 먹으면 추격으로 가필은 산산조각이 된다. 지금도 피를 토하며 구르는 가필에게 숨이 붙어 있는 것은 서 있는 투신에게 추격의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
투신은 수로에서 올라온 가필을 보고 있었을 때와 같은 자세로, 같은 눈으로, 숨을 거칠게 쉬며 패자를 내려다 보고 있다.
얕보이고 있다, 따위의 반발심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 차원 이전의 문제다.
서로 대등한 기량으로 맞선다는 그런 어엿한 전사로서 상대할 수 있는 역량까지 접근하지 않았다.
투신, <여덟 팔의 쿠르간>의 이름은 건재하다.
“후우…… 후우…… 읏.”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죽었던 전설, 영웅이 된 남자, 투신.
실력주의인 볼라키아 제국에서 종족채로 열등과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몸 하나로 종족과 운명을 바꾼 남자.
가필은 그 전설을 동경하는, 그저 풋내기일 뿐이다.
“후우…… 후우…… 훗.”
그런데도 어째서 몸은 일어서는 것일까.
마음이 이렇게까지 꺾였지만, 여전히 몸은 일어선다.
“하아…… 시끄러… 시끄러… 시끄럽다고……!”
뛰는 심장의 고동이 지금은 지독하게 시끄럽다.
귓전에서 북이 울리는 것 같은 성가심에 가필은 힘껏 지면을 밟았다. 발바닥 밑의 포석이 금이 가, 균열이 쭉 쿠르간의 발밑까지 뻗는다.
말이 없는 쿠르간과 피투성이인 가필의 상대.
휘청이는 가필이 다시 한번 발톱에 힘을 집중하며 포석을 밟았다. 직후, 쿠르간이 움직인다.
아니, 움직여졌다.
“――――”
가필의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지령의 가호>가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은 생겨난 균열에서 쿠르간의 발밑에 닿아 거한을 떠받치는 지면을 밀어올렸다.
떠오른 거한, 아무리 전투에 특화된 육체를 갖고 있었다 해도 물리적인 법칙에 거스르지 못한다.
하반신을 지탱하지 않고 강력한 일격을 낼 수 없다.
“가아아아아아――!”
이 한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허공에 뜬 쿠르간을 노려, 가필의 양팔이 날뛰었다.
부분적으로 짐승화해 대호의 체모와 근육으로 감싸인 팔이 쿠르간을 두드려 패고 있다. 그 같은 투신도 공중에서 자세를 확보할 수 없는 모양으로는 타격력을 죽일 수 없다.
극음이 울리고, 들고 있는 오니보우쵸로 쿠르간이 막아낸다.
그것을 받아 치는 가필의 차는 공격. 처음으로 방어의 틈을 노려 두꺼운 복근을 발톱이 도려낸다.
‘<’ 모양으로 꺾이는 투신에게 갈채하며, 가필은 계속해서 기세를 더해 타격을 계속 넣는다.
흉부에, 대퇴부에, 무릎에, 복근에, 타격을 넣는다.
충격으로 타격을 입은 쿠르간은 많은 팔을 방어로 돌리는 것도 못하고 만세하는 것 같은 모습이 된 채다.
“받아라아아아!!”
승리를 눈앞에 둔 확신에 가필은 외친다.
치켜 든 짐승의 발톱이 쿠르간의 가슴을 베어내, 거무칙칙한 피가 가필의 몸을 물들인다.
뿜어져 나오는 피를 핥고, 가필은 계속해서 추격한다.
확실히 궁지에 몰려 있다고, 흘끗 시선이 쿠르간의 철면피로 가는데――직후,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
맹공을 계속하는 가필을 보는 투신의 눈은 처음과 아무런 변화도 없이 흔들리지도 않고 있었다.
“――아.”
그리고 동시에 가필은 살핀다.
너무나 늦었다, 투신의 반격의 전조를.
날아오는 두 자루의 오니보우쵸는 순간적으로 내밀고 있던 가필의 양팔을 방패 너머로 충격을 줘 꺾어, 지면으로 내동댕이쳤다.
“커.”
괴로운 비명, 그것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시야는 천지를 한순간에 놓쳐, 사지가 모두 날아간 것 같은 충격이 가필을 지배한다.
무슨 일인가, 그것만은 알았다.
양다리로 버틸 수 없는 공중에서 쿠르간은 상반신만을 이용한 방법으로 가열찬 일격을 날렸다.
방법은 단순명쾌.
오니보우쵸의 도신을 두 개의 팔로 잡고, 내리치는 힘의 부하를 증대시켜 위력을 비약적으로 올린 것이다.
――즉, 딱밤 원리.
두 개의 팔로 훅을 만들어, 접근 공격은 치명적인 일격이 되었다.
허공에 띄워 공격력을 뺏는다. 그런 전법 따위, 당연하다는 듯이 무효화되었다.
“고오아앗!”
반격의 실마리가 없어진 가필을 바로 위에서 거한의 발이 짓밟는다.
낙하하는 기세 그대로 짓밟힌 가필은 전신을 삐걱거리고, 포석에서 튀어 올랐다.
아픔과 상실감에 사고를 지배당하면서, 단지 생존본능에 따라 치유마법을 발동시킨다.
상완, 팔꿈치, 어깨와 세 곳이 부러진 뼈를 붙이며, 뒤집어진 내장을 복원한다. 갈비뼈나 허리뼈, 왼쪽 대퇴부도 비틀려서 급속 회복으로는 따라가지 못한다.
게이트가 가열하고, 마나를 다 써 버릴 각오로 마법을 발동.
지면을 구른 전신에서 대지의 힘을 퍼 올려, 닥치는 대로 몸의 치료, 수복, 회복에 때려 넣는다.
수초, 수십초, 어쩌면 수분.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기능을 잘라내고, 가필은 육체의 수선을 서둘렀다.
그리고 간신히 움직일 정도의 기능을 되찾아, 목안에 가득 찬 피를 토해 내며 몸을 일으킨다.
“――――”
투신은 조용히 피투성이인 가필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가필의 눈꺼풀 안쪽이 뜨거워진다. 복받치는 격정에 고개를 숙이고, 이가 떨렸다.
“뭐… 하는 거야.”
아까부터 쿠르간의 자세는 일관됐다.
도전하는 가필을 요격은 해도, 직접 공격할 기색도 없으면서, 끝을 내려는 추격도 하지 않는다.
세 번, 동정을 받은 가필.
그 가슴 속에서 날뛰는 패배감과 굴욕은 그의 전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산산이 부쉈다.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을 정도로, 이렇게 몇 번이나 꼴사나움을 보이는 것을 강요당한다면, 죽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투신 쿠르간, 볼라키아의 영웅.
모든 전사의 정점을 본 그라면, 가필이 품고 있는 번민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차라리…….”
죽여 달라고, 그렇게 간원하면 되는 것일까.
솔직히 패배를 인정하고, 힘의 차이가 분명하다고 호소하며, 전사로서 죽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되는 것일까.
방패를 풀고, 양팔을 벌리고, 얌전한 얼굴로.
그렇게 부탁하면, 들어줄 것일까.
투신의 일격으로 목숨을 사그라뜨리면, 어쩌면 그것은 전사로서 자랑스러운 최후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끝나버리면… 편할 텐데.
“끝나버리면… 편할 텐데… 말이야.”
방패를 끼고, 양팔을 모으고, 엄니를 드러내고.
싸움 자세로, 가필은 정면을 본다.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싸울 때, 언젠가 들었다.
그러는 게 너는 강하다고, 쓸데없는 생각은 버리고, 본능에 맡기라고.
――정말로, 그럴까?
“소리가… 사라지지 않아.”
고동이 시끄럽다.
전신의 뼈가 삐걱거리고, 붙고, 일그러진 소리가 난다.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쓸데없는 소리가, 전부, 모두, 무엇이든, 방해된다.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겠지만.
“들려…… 계속, 들리고 있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무(無)가 되려고 해도.
가필의 귀에는, 혹은 고막이 아닌 부분이 소리를 계속 골라내고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 친한 목소리, 낯익은 목소리, 가슴이 뜨거워지는 목소리, 목이 메이는 목소리, 자랑스러워 하는 목소리, 화를 참지 못하는 목소리.
여러 가지 목소리가 가필을 놓지 않는다.
본능에 맡겨 싸우려고 해도, 밀려오는 파도가 도저히 빠지지 않고, 가필은 혼자가 될 수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약해진다면, 지금의 자신은 약하다.
<성역>에서 혼자, 불량하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을 때와 다르게, 여러 가지와 만나고, 여러 가지를 봤다.
안아 든 것이 늘어난 한편, 그러는 것이 약한 것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약해지는 것일까.
“……그럴 리... 없어.”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를 끌어안고, 패배감을 삼키고, 승리의 갈망에 빠져, 동경도 선망도 집어 넣어서.
――가필은 투신에게 싸움을 건다.
“――쿠하.”
“――――”
가필의 눈빛이 변한다.
그것을 지켜본 쿠르간이 조용히 움직였다.
네 자루의 오니보우쵸 중 두 자루가 칼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쿠르간이 전의를 줄였다는 것이 아니다. 두 자루의 오니보우쵸를 주력하는 힘이 커지고, 그것을 뒷받침하듯 투신의 자세가 변화한다.
우뚝 서서 기다리고 있던 투신이 오른다리를 앞으로, 약간 앞으로 기울인 자세로 가필과 마주 봤다.
전투, 그것을 하기 위한 자세.
――쿠르간이 가필을 적이라고 인정한 증거다.
“즉, 아까까지는 문자 그대로 애취급을 했다는 거지. ‘구왕새는 육아에 적합하지 않다’ 이걸 말하는 게 아닐까.”
“――――”
무언, 그 투신에게 가필은 뛰어들었다.
가열한 도약에 오니보우쵸로 응한다.
정면에서 벽이 다가오는 것 같은 절망감, 그 공포가 보이는 착각을 억누르며, 가필은 틈을 빠져나갔다.
방금 일합에서는 눈짐작을 잘못한 첫 공격.
이유는 쿠르간이 내는 귀기와 필요 이상으로 영웅을 무서워하는 가필의 마음 그 자체가 일으킨 착각.
“오… 오오오!”
쳐 올리는 주먹이 쿠르간의 몸을 파고든다.
고기를 강철로 때리는 둔탁한 울림, 그러나 친 것은 노린 몸이 아닌 사이에 꽂아 넣은 팔 하나다.
“웃… 기지마아!”
주먹을 손바닥으로 받으면서 가필이 소리친다.
발바닥에서 힘을 끌어 올려, 그것이 쿠르간의 손바닥 안의 주먹으로 전하면서 비트는 기세로 타격력을 폭발시켰다.
쿠르간이 받은 손가락이 뒤틀리고, 맹렬히 내려 치는 주먹을 몸을 돌려 회피. 기세를 몰아 투신의 허리, 가슴에 발을 대고 몸을 치닫아 턱을 튀어 오르듯이 *서머 솔트.
*스트리트파이터 가일의 발차기 기술
쿠르간이 몸을 젖힌 동시에 오니보우쵸가 옆을 휘둘러 친다.
바람과 대기의 비명에 궤도를 읽어 두 팔의 방패로 공격을 받는다.
굉음이 울리고 가필의 몸이 크게 날아간다.
“루루루루아읏――.”
사지를 포석에 찔러 넣어 나가떨어지는 몸을 억지로 제동. 얼굴을 든 눈앞에 투신의 추격이 꽂힌다.
지금까지 추격을 하지 않았던 쿠르간이 가필의 몸을 뭉게버리러 온다.
판단은 한순간, 행동은 찰라, 결과는 직후다.
“――――”
포석에 찔러 넣은 양팔을 들러 올려, 눈앞의 지면을 떼어 내 내던졌다. 돌입하던 쿠르간이 어깨에서 그 벽을 때려 부수고, 오니보우쵸가 파고든다.
격렬한 소리.
직격을 받은 가필이 밀려 내려간다. 버티기 위해서 꽂아 넣은 뒤꿈치가 지면을 파내고, 부러진 엄니가 날아갔다.
그러나――
“얕보지… 말라고!!”
오니보우쵸의 찌르기, 그 끝을 이가 받아내고 있다.
송곳니가 꺾여서 대량의 피가 오니보우쵸의 도신을 타고 흐르지만, 가필은 주저하지 않는다.
“――――”
목의 근력과 턱의 힘이 폭발해 쿠르간의 몸이 흔들리고 있다.
꽉 깨문 오니보우쵸의 자루를 다른 팔이 잡아, 단숨에 빼내려 했지만 박혀 있는 엄니는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물고 있는 엄니의 힘이 커졌다. 가필의 상반신이 부풀어 올라 반수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크… 오… 오오오오… 카아아아아아!!”
머리의 짐승화는 현저하게 사고력을 저하시킨다.
문자 그대로 짐승과 다름없는 이성으로 떨어뜨려 그것은 양날의 검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 가필은 그것을 선택했다.
혐오스러운 하프의 힘이야말로, 지금은 필요했다.
다완족이라는 자신의 출신, 그 힘을 최대한 발휘한 투신에 대해 자신의 뿌리를 부정한 채 이길 수 있을까.
범이여, 범이여, 범이여, 지금 이 순간, 힘을 빌려 줘――!
“――――”
금호의 눈을 떴을 때 오니보우쵸가 부러졌다.
도신이 전부 금이 가서 손잡이까지 붕괴가 전해져 힘을 둘 곳을 잃어버린 거체가 크게 흔들렸다.
――진정한 호기.
“카… 아아아아아!!”
내려치는 짐승의 팔이 쿠르간의 두부를 후려 갈겼다. 충격에 흔들리는 거한을 다시 발톱의 일격이 노린다.
발톱의 참격과 짐승의 팔의 타격이 동시에 들어가 쿠르간이 피를 흩뿌리며 크게 떨어졌다.
“――――”
추격, 그 기세를 꺾어 공격하는 주먹을 쳐서 떨어뜨린다.
대호의 안면에 팔꿈치가 처박혀 코가 함몰한 직후에 바로 아래에서 턱을 추켜올렸다.
무릎이 내려가, 그 자리에서 무너진 몸으로 힘껏 버티고, 곧게 발사한 주먹이 교차되어 서로의 안면을 강타한다.
피가 흩날린다. 시야가 깜깜해진다.
머리가 천지를 잃고, 육체는 모든 것을 버렸다.
상관없다. 소중한 것은 모두 마음속에 차 있다.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이 피투성이로 너덜너덜한 몸을 자극해 움직이게 한다.
오니보우쵸를 휘두른다.
두 자루 남겨 둔 것 중 파괴되지 않은 한 자루.
판단은 한순간, 행동은 찰라, 결과는 언제든 직후다.
“카… 오……읏.”
몸통을 후려 친 칼날을 방패 위로 미끄러뜨려 복근으로 받는다.
충격을 분산시키면서 여전히 두꺼운 복근마다 육체를 양단할 듯한 위력이 일격에는 있었다.
그러나, 철사와 같은 체모와 부풀어 오른 대호의 거구를 양단하기에는 조금, 파고든 것이 모자란다.
쿠르간의 발밑은 가필이 파고들어 부수고 있다. <지령의 가호>의 축복이 그것을 불러들였다.
“오… 오오오… 오오오오오!”
복근에 칼날을 꽂은 채로 투신의 몸에 달라붙었다.
힘으로 맞서려고 쿠르간은 내려가지만 가필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빠진 엄니를 가진 입이, 여러 번 파괴된 팔이, 이성의 상실을 각오한 본능이, 쿠르간을 잡아들였다.
“――――”
힘껏 버티며 움직이지 않는 거구를 거머잡은 가필은 쿠르간을 배후――수로에 떨어뜨린다.
떨어지는 순간, 쿠르간의 팔이 이쪽의 목덜미를 잡아 그대로 수면을 향한 낙하에 말려들었다.
거친 물소리가 나고, 두 사람의 몸이 수로에 떨어졌다.
두 거구는 몸싸움을 하면서 물살을 타고 수로를 유혈로 붉게 물들이면서 흘러내렸다.
“――――”
수중에서도 몸싸움을 하는 두 그림자의 공방은 멈추지 않는다.
물의 저항을 무시하고, 어두운 수중이라는 시야가 나쁜 와중에도 가필과 쿠르간은 서로 계속 때린다.
거대한 주먹에 내장이 뒤틀리고, 격통에 신음하며 산소를 폐에서 짜낸다. 통증은 더 심한 통증을, 고통은 더 강한 고통을 부르는 수중전투의 계속.
그 안에서 가필은 자신의 불리함을 깨닫는다.
눈앞의 투신은 어째서인지 호흡하는 기색이 없다. 시체가 되살아난 사실을 실감한다.
산소결핍이 행동에 장해를 만들어, 가필의 움직임에 완만한 정체가 덮친다.
흐름은 서서히 기세가 커져, 경사를, 폭포를, 두 사람의 몸은 몇 번이나 떨어졌다.
그 반복 속에서 드디어 움직임이 멈춘다.
의식이 멀어지고, 그대로 손끝의 투지를 잃어버린다.
“――으.”
한 번 호흡, 부족하다.
그것이 틀림없이 패인이 되어 가필의 의식이 몽롱해진다. 그리고 승패는――.
“――――”
소리의 전달이 나쁜 수중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멀어지고 있던 의식이 되돌아와, 검고 탁한 물 속에서 가필은 본다.
오니보우쵸가 수로의 벽면을, 바닥을 깎고, 투신의 일격이 물이 흐르는 길에 치명적인 상처를 낳는 것을.
어째서… 라고 할 시간도 산소도 없다.
울려 오는 극음이 물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결국에는 강철이 부러지는 소리와 충격이 겹친다.
다음 순간, 생긴 것은 새로운 엄청난 흐름이다.
원래 수로의 흐름과 다른, 별개의 흐름――가필의 몸도 그 흐름을 타고 빨아들이는 듯한 수로에서 내던져졌다.
“――푸아… 케… 케엑.”
물에 휩싸이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가필은 삼켰던 대량의 물을 크게 토해 냈다.
눈에서도, 코에서도, 귀에서도, 대충 모든 안면의 구멍에서 물을 흘리며 가필은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들었다.
“――고저스 타이거?”
물이 흘러드는 소리에 섞여 가냘픈 목소리가 불렀다.
2020년 04월 26일 명칭 및 오역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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